
지하철은 늘 시끄럽다
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
안내 방송
이어폰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까지
하지만 이상하게도
그 소음 속에서
어떤 말들은 또렷하게 귀에 남는다
의도하지 않았고
엿듣고 싶지도 않았는데
그 말 한마디가
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 때가 있다
그날도 그랬다
출근도 아니고
급한 약속도 없는 평범한 이동 중이었는데
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들이
생각보다 오래 남았다
“그래도 그때 그만둔 건 잘한 선택이었어”
내 앞에 서 있던 두 사람은
오랜만에 만난 듯 보였다
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
일과 과거의 선택으로 흘러갔다
그중 한 사람이
이렇게 말했다
“그래도 그때 그만둔 건 잘한 선택이었어”
말투는 담담했지만
그 문장에는
여러 해를 넘긴 무게가 담겨 있었다
후회도 미련도 아닌
정리된 확신 같은 느낌
그 말을 들으며
나는 문득
내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선택들을 떠올렸다
왜 그때 그렇게 했는지
아직도 설명하지 못하는 결정들
자꾸만 되돌려보는 장면들
그 사람은
아마도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
그리고 그만큼
자기 선택을 책임지는 시간을
지나왔을 것이다
지하철 한 칸에서 들은 그 말은
선택이 옳았느냐보다
선택을 받아들이는 태도가
얼마나 중요한지를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
“요즘은 그냥 무난하면 제일 좋은 것 같아”
조금 떨어진 자리에서
젊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
예전 같으면
야망이나 목표 이야기가 나올 법한 나이였지만
그날 들린 말은 의외로 조용했다
“요즘은 그냥 무난하면 제일 좋은 것 같아”
그 말에는
체념보다는
현실적인 안도가 섞여 있었다
예전에는
특별해지고 싶고
눈에 띄고 싶고
남들보다 앞서가야 할 것 같았다
하지만 그 말은
그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뒤에야
나올 수 있는 문장처럼 느껴졌다
나는 그 말을 들으며
‘무난함’이라는 단어를
다시 생각하게 됐다
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
평가절하되던 상태가
사실은 꽤 안정적인 지점일 수도 있다는 것
지하철 안에서 들은
그 짧은 문장은
성공의 정의가
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신호처럼 들렸다
“괜찮다고 말하는 게 더 힘들더라”
이번에는
전화 통화였다
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
말하는 쪽의 감정은 충분히 전해졌다
“괜찮다고 말하는 게 더 힘들더라”
그 말은
지하철 소음 속에서도
이상하게 선명했다
우리는 종종
괜찮다는 말을
너무 쉽게 사용한다
사실은 괜찮지 않으면서도
그 말로 상황을 정리해버린다
하지만 그 한마디가
얼마나 많은 감정을 눌러 담고 있는지
우리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
그 통화를 하던 사람은
아마도 꽤 오랫동안
괜찮은 척을 해왔을 것이다
나는 그 말을 들으며
내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
“괜찮아”라는 말들을 떠올렸다
그 말이
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
아니면
나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는지
지하철에서 스쳐간 그 문장은
감정에 솔직해지는 일이
얼마나 어려운지
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
남의 대화가 나에게 남기는 것들
지하철에서 들은 말들은
대부분 다시 떠올리지 않는다
누가 했는지도 모른 채
흘려보낸다
그런데 가끔
이렇게 마음에 남는 문장들은
나를 돌아보게 만든다
그 사람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
그 말이
내 안의 어떤 질문과
겹쳤기 때문이다
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
내 생각을 정리해주고
내가 미뤄왔던 질문을
꺼내놓게 하기도 한다
지하철은
그저 이동 수단일 뿐인데
그 안에는
각자의 삶이
압축된 상태로 실려 있다
서로 모르는 사람들이
각자의 사정을 안고
같은 방향으로 잠시 이동하는 공간
그래서인지
지하철에서 들은 말들은
유난히 현실적이고
꾸밈이 없다
그 솔직함이
때로는
책이나 강연보다
더 깊게 남는다
마무리하며
지하철에서 들은 대화들은
의미를 가지려고
존재했던 말들이 아니다
그저
누군가의 일상적인 문장이었고
순간의 감정이었을 뿐이다
하지만 그 말들이
내 하루에 남아
생각을 바꾸고
시선을 바꾸고
질문을 남겼다면
그건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
우리는 매일
수많은 말들 사이를 지나간다
그중 어떤 말은 흘려보내고
어떤 말은 마음에 남긴다
아마 그 차이는
말의 무게가 아니라
그 말을 들을 준비가
되어 있었느냐일 것이다
다음에 지하철을 탈 때
괜히 귀를 기울여보자
어쩌면
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
당신의 하루를
조용히 바꿔놓을지도 모른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