
사람들은 생각보다
자신의 상태를 말로 숨기지 못한다
의식적으로 고른 말보다
무심코 튀어나온 말이
그 사람의 상황과 감정을
더 정확하게 보여줄 때가 많다
요즘 들어
유독 자주 들리는 말들이 있다
누가 유행시키지 않아도
비슷한 표현들이 여기저기서 반복된다
그 말들은
개인의 성격이라기보다
지금을 사는 사람들이
공통으로 느끼는 피로, 불안, 기대치를
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
이 글은
요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을 통해
지금 우리의 상태를
조심스럽게 들여다본 기록이다
그냥 이라는 말에 숨겨진 에너지 부족
요즘 대화에서
가장 자주 들리는 단어 중 하나는
단연 그냥 이다
그냥 그래
그냥 할까 말까 고민 중이야
그냥 살아
이 말은
설명을 포기한 상태에서 나온다
정확히 말하자면
설명할 에너지가 없을 때
예전에는
이유를 붙이고
배경을 설명하고
자기 생각을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었다
하지만 요즘의 그냥 은
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
생각이 너무 많아서 더 말하기 싫을 때
나오는 말에 가깝다
이 단어가 자주 쓰인다는 건
사람들이 무성의해졌다는 뜻이 아니라
이미 충분히 소진되어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
괜찮아 라는 말이 진짜 괜찮다는 뜻이 아닐 때
괜찮아 는
언제부터인가
안부 인사의 자동 응답처럼 쓰인다
사실은 괜찮지 않아도
대화를 길게 만들고 싶지 않을 때
상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을 때
이 말은 가장 빠른 마무리 수단이 된다
문제는
이 말을 너무 자주 쓰다 보니
정작 나 스스로에게도
괜찮지 않다는 신호를
무시하게 된다는 점이다
요즘 사람들은
힘들지 않아서 괜찮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
힘든 걸 설명할 여력이 없어서
그렇게 말한다
괜찮아는
강함의 표현이 아니라
감정을 접어두는 방식으로
변해가고 있다
다들 그러지 뭐 에 담긴 체념과 안도
다들 그러지 뭐
이 말은
위로처럼 들리지만
자세히 들여다보면
체념과 안도가 동시에 들어 있다
예전에는
문제가 있으면
해결하려고 애썼다
이상하다고 느끼면
질문이라도 던졌다
하지만 요즘 이 말은
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기 위한
방어 문장처럼 쓰인다
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
유난 떨 필요 없으니까
이 말은
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기도 하지만
동시에
불편함을 묻어버리게 만든다
요즘 사람들이
이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는
세상이 편해져서가 아니라
버텨야 할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
나중에 라는 말에 밀려난 현재
나중에 할게
나중에 생각해보자
나중에 정리하면 되지
이 말은
미루겠다는 선언이기보다
지금은 감당하기 어렵다는 고백에 가깝다
요즘 사람들은
게으르기보다는
이미 처리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
그래서 현재의 부담을
미래로 넘긴다
문제는
그 나중에가
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
나중에 라는 말이 반복될수록
현재는 점점 얇아지고
삶은 준비 상태로만 남는다
이 단어의 잦은 사용은
요즘 사람들이
지금 이 순간을 살기보다
버티는 상태에 더 가까워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
마무리하며
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말들은
생각보다 정직하다
그냥
괜찮아
다들 그러지 뭐
나중에
이 말들은
개인의 문제라기보다
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
공통으로 공유하는 감정의 흔적이다
말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
다만
그 말이 나왔을 때
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겠다
이 말 뒤에
내가 설명하지 않은 감정은 무엇일까
말을 들여다보는 일은
결국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
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들이
조금 무거워졌다면
그건 우리가 약해져서가 아니라
꽤 오래 잘 버텨왔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